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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누구야?

나는

나는

나는 외롭고 적당한 상처와 알지 못하는 그리움을 갖고 있는  사람


혼자, 방이다 ... ...

4각의 꼭지점을 바라보면서 선을 잊고 잊고 이어간다. 

네모난 방안의 천정 나의 어릴적 기억은 유난히 방 천정의 기억이 많다

부모님은 항상 외부에, 나는 혼자방에 그것이 자연스러웠고, 나는 착하고 얌전한 아이 


5살인지 6살인지  엄마가 비디오를 빌려주면서 말했다. 큰엄마 되실분이 저녁에 올꺼야 나는 무언가 먹고 비디오를 

보고 티비를 봤다. 혼자서 보는 티비는 편하다. 그리고 익숙하다. 

큰엄마가 될 아줌마가 왔다 무언가 맣하고 이야기하다가 자라고 하며 갔다. 

다음날 어떻게 지나갔는지 기억이 없다.


 좌우간 그게 부모님의 늦은 결혼식이고, 그날의 혼자만의 1박이 부모님의 신혼여행 이었다. 

정확하지가 않다. 그냥 내 기억의 조각이 그러했고, 혼자서 하루를 보낸것은 내 어릴적 기억의 일상이였다. 

선명한 기억은 혼자 있는 방 그 사각의 공간적 이미지이다. 

물론 나의 일방적인 기억이다. 


 상상을 한다. 그냥 그것이 익숙한 놀이이지 장난감이자 친구

혼자서 말을 한다. 나에게 묻고, 나에게 질문하고, 나에게 답을 한다. 

누구나 다 그렇다고 생각 했고, 다 혼자만의 방식이 있을것이란 생각은 정작 해보지 못했다.


교회는 자연스러웠다. 

내 질문에 호의적였고,  우화나, 전래동화 같이 성경의 스토리를 익숙했고, 자연스러웠다. 산타를 초등학교까지 믿었으니... ...

나를 수용해 주었고, 때때로의 공감은 행복 하게 하였다. 


부모님은 굉장히 중요하다고 했다. 교회는 성경은 하나님은 

"OO 장난감이 갖고 싶어요" 

"하나님께 기도 해봐" 아버지는 이렇게 대답했다.

그래서 믿고 기도 했다. 그 장난감은 생기지 않았다. 그 이후에 어떻게 했는지 생각이 나지는 않는다. 

(물론, 큰아버지가 사주고 부모님이 사주신게 있다. 결핍을 말하는건 아니다. )

"하나님께 기도 해봐"는 아버지의 가장 막강하고 편한 그리고 나의 조름을 단박에 입다물게 하는 절대적인 문장 이였다. 


철야기도, 부흥회, 주일 학교 등등 나는 빠지면 안되었고, 졸아도 안되었다. 혼이 났고, 허벅지를 꼬집혔다. 

그래서 나는 교회에서는 칭찬받는 아이 였다. 열심히 따랐고, 열심히 했으니


문제는 10대 부터다 

점점 이게 뭐야 하는 생각, 그것이 커져 갔다. 

너무 절대적이고 내 몸안에 머리 안에 차있는 전부가 부정 되는 느낌 

지금 생각 해봐도 너무 큰 스트레스 

도대체가 뭐가 진짜야?!

왜 부모님은 교회의 모습과 집에서의 모습이 다른거야?

그럼 우리 부모만 그런건가? 저 집사님은? 저 장로님은? 저 목회자는?

성경은 진짜 인가? 

하나님은 살아 계신건가? 예수님은 성령?... ...


이스라엘 어디 있는지도 모르겠는 나라 그리고 그들의 유일신 

뭐야 이게 아니 그런 교리적 접근이나 고민 이전에 왜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이리 불행하고 치열하고 불편하고 사람을 괴롭히는거지 

왜 서로 더 못 살게 굴고 싸우고 뭐지 ?

이게 진짜야?

하나님이 살아계시다면 왜 이러지? 왜 나는 죽고 싶지 ?

삶이 인생이 한없이 헛되다고 느껴지고 생각 되는 이유가 뭐지 ? 

진짜 살아 있는 신이고, 유일하고, 이것이 진리 라면 

나의 질문에 답을 해주세요. 

하나님 만나주세요.